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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생 경열씨의 ‘대리운전 이야기 Ⅱ’
73년생 경열씨의 ‘대리운전 이야기 Ⅱ’
  • 편경열
  • 승인 2018.04.02 23: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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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생 경열씨
73년생 경열씨

지난 명절에 처음으로 아버지께 용돈으로 20만원을 드렸습니다.
그전에는 늘 10만원이었어요.
고정수입 없이 몇달이 지난 터라 상황은 좋지 않았습니다.
근데 이상한 오기가 생기더군요.
명절이 지나자마자 아버지께 전화가 왔습니다. ...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줬어.....너두 힘든디...”
아버지는 진짜 놀라신 듯 했습니다.
어찌어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는데....속상했습니다.
솔직히 창피했습니다.
괜찮은 처지였다면 평소처럼 너스레를 떨었겠지만, 그날은 그럴 수 없었어요.
‘무슨 놈의 아들이 45년을 살면서 아버지께 용돈 20만원 드리고 저런 소릴 다 듣는가?’
인생 헛 산 듯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쪽 눈으로 평생을 살아오며 혼자서 아들을 키웠습니다.
따뜻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계셔서 살았습니다.
그렇게 키운 아들한테 용돈 20만원 받는 일이 그리도 놀랍고 고마운 일이라니...부끄러운 아들입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교회에 몸담고 지내오면서, 목회자에게 가난은 미덕이라고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르겠습니다.
인생을 헛살아온 것 같습니다.

몇일 전 밤에 일 나가면서 아버지께 전화 드렸더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밤마다 나가느냐고 답답한듯 물으셨습니다.
교회를 사임한지 반년이 지났지만, 아버지는 아직 모르십니다.
더더구나 야간에 나가서 대리운전 한다고 하면 아버지는 또 괴로운 밤을 보내셔야 합니다.
그럴 수야 있나요.

죽으라는 법은 없고, 죽지 않고 살 거면, 어쨌든 오늘을 또 살아내야 합니다.
가끔 별 일 없느냐고 묻는 전화를 받습니다.
사는 게 별 일입니다.
한 날 괴로움은 그날로 족합니다.
오늘은 이력서 사진을 바꿔보려고 합니다.
그래도 인물로 먹고 살아왔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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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년생 부씨 2018-04-02 23:34:09
사진이 실문보다 넘 잘 나온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