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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행위”
“사람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행위”
  • 임재화
  • 승인 2017.10.2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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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경 저, 문학과 지성사, 2015년)
글쓴이: 임재화

우리가 인간의 개념과 사람의 개념을 쉽게 분리해내지 못함이 일면 감사하다는 생각이다. 절대적 환대의 개념이 사람들의 인식에 어느 정도 스며들어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람들이 투쟁을 통해 쟁취한 권리들은 어떤 인간이든 사람이라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고 지금 우리는 절대적 환대가 그 전제로 반드시 요구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 전제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지 않다. 이 책을 읽기 전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 전제를 올바로 이해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는 사회는 내부의 사람들을 향해 전쟁을 계속해서 치르고 있음에 다름없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의 사람들처럼 인정투쟁을 계속해서 해나가야만 한다.

그 인정투쟁의 본질은 사람에게 '장소'를 만들어 주는 것 이고, 사람으로 살아갈 '가면'을 만들어주는 것 이다. 환대라는 추상적 개념은 장소를 통해 구체화 된다. 인간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 사회로부터 성원권을 부여받아야 하는데 그 성원권을 부여하는(혹은 부여받는) 지리적인 실체가 '장소' 이며, 그 장소에서 인간들은 서로 상호작용의 의례를 거치며 사람이 된다. 이 상호작용의 의례를 하게 하는 것이 '가면'이다. 그 '사람 가면'이 그 사회에서 그 사람의 역할이며, 그것은 추상적 개념에서 '자기 공간' 자기 장소가 된다.

모든 사람이 자기장소를 갖게 하기 위해 투쟁한다는 것은 사회 공공성 증대, 복지 증대, 재분배와 정의의 문제를 모두 포함한다. 그래서 절대적 환대는 개인의 영역에 다뤄질 부분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기반이 되는 문제이다.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인정투쟁을 위한 우리 주장의 가장 든든한 기반이다.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한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절대적 환대의 개념은 우리에게 지금 일어나 행동하라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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