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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질문이 필요한 때 "이미 시작된 화두는 지역이다"
(칼럼) 질문이 필요한 때 "이미 시작된 화두는 지역이다"
  • 최순희/배재대학교 교수, 대덕밸리라디오 총괄기획
  • 승인 2022.10.04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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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희/배재대학교 교수, 대덕밸리라디오 총괄기획
최순희/배재대학교 교수, 대덕밸리라디오 총괄기획

2008년 나는 50년 인생 중 25년을 살아 온 시간과 단절해야 했다. 방송 프로듀서로 살아 온 시간을 뒤로하고 찾아 간 곳은 학교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모든 자리가 새 자리였다. 특히 자기의 콘텐츠(프로그램)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눴던 스태프들이 없다는 것, 그건 자신을 다시 정의해야 하는 것이기도 해서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압박감 보다는 해방감이 더 컸다. 새로 세팅되는 경험이었다.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새로운 자극을 스스로 받곤 했지만, 누군가에게도 자극을 줄 수 있는 평등한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곳이 대학이라는 생각으로 기대감도 컸다. 물론 그 곳 역시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사회이고, 관계 안의 에티튜드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 까지 또 시간이 필요했다.

개학을 하고 한 달이 지났다 요즘 학생들을 만나면서 가끔씩 나의 늦은 공부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30년을 건너 온 당시 대학원 생활은 몸이 힘들었을 뿐 생각이 낡지 않았다는 것이 위안이 될 만큼 아날로그 방식으로 익힌 지식과 경험이 제법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을 때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달라졌다. 3년 만에 시작한 대면강의용 첨단강의실에서 오히려 어린 학생들에게 배우며 시작하기도 한다. 디지털 기기를 거침없이 이용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부럽기까지 하다. 학생들 대부분은 테블릿PC로 필기하고 저장한다. 교재를 책으로 보는 학생이 오히려 생소하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매번 새로운 강의툴을 사용해야 했던 지난 3년의 코로나 시대까지 먼 길을 달려 온 기분이 든다.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요즘의 미디어와 경영일선에서 쏟아져 나오는 지식관련 용어들은 우리를 왠지 주눅 들게도 한다. 메타버스, NFT 등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개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가늠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건 기술의 진화가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고 믿어 온 나에게도 이제까지의 조직이나, 가치, 기술, 시장의 관점부터 개인의 삶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인 작동원리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혹스럽다. 이세돌과 알파고와의 대결 이 후,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처럼 호들갑을 떨던 때도 불과 몇 해 전이다. 한 때 동네 세탁소에서도 ‘컴퓨터 세탁’이러고 써 붙여야 했던 때처럼, 상술로까지 여겨지는 마케팅용 인공지능(AI) 광고문구들을 순진하게 믿지는 않지만 우리 일상의 많은 영역에서 인공지능을 이용한 비즈니스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엔 의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몸의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어느 지역에서 누구와 매일의 일상을 나누는지가 지구의 문제, 나라의 문제에 앞서 내 삶의 많은 부분에서 만족과 불만족, 행복과 불행을 저울질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미디어에 오래 종사해 온 사람으로 한 발작 떨어져서 바라 본 지역의 삶과 미디어는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대부분의 경제가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고 정치 지형도 여의도에 매달린 존재로 서울지역이 기침을 하면 여타지역은 폐렴에라도 걸린 것처럼 휘둘리는 모습도 탐탁치않았다. 그러던 중에 생각해 낸 것이 지역사람이 중심이 되는 미디어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가지게 되었다. 학위를 마친 2014년 가을, 그 해 봄에 문을 연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라디오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했다. 그 때 시민들이 방송 미디어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일부 시민들은 교육이 끝나고도 계속해서 방송활동을 하고 싶어 했다. 전문가로서 함께 동참하기만 하면 ‘마을미디어’를 만드는 동력이 되겠다는 판단을 했다. 이왕이면 과학도시인 대덕을 담는 시민공동체 미디어를 만들면 대한민국에서도 유일한 곳인 대덕연구단지를 포함한 대전지역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나타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미디어 학습 공동체가 시민 미디어 공동체로 자연스럽게 발전했다. 현재 8년차의 지역 공동체 미디어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이후, 많은 마을미디어가 생겨났다. 이 글이 실릴 비알뉴스는 지역을 기반으로 5년이 지났다. 어느 지역 미디어 공동체에도 뒤지지 않는 대전 동구지역 주민의 미디어로 우뚝 성장했다.

전통 미디어는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회적 괴리와 불신을 만들고 있다. 학교도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제 역할을 잃은 지 오래다. 예전에는 언론이, 학교가 정보와 지식의 생성과 교육의 역할을 맡았고 제도권 안에서 삶을 누리고 있다면 우리는 비교적 안심했다(윤지영, 왜 'why'인가?, 오가닉미디어랩, 2022). 이 시대 우리는 무엇을 지도 삼아 가야할까?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사람들, 아니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구인 모두의 질문이 아닐까?

이미 시작된 화두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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